아침부터 읽었는데

머리가 어지간히 복잡해서 정리해두려 한다.


진짜 내가 읽고 느낀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책 꼬다리에 있는 해설도 읽다 접어두고 쓰고 있는 글이니

엄청 주관적인 해석이 많이 섞여있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짧은 감상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3부작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으로 깊은 곳에 잠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1, 2부를 읽는 동안에는,

마치 호흡을 위해 수면가로 올라오듯 쉬어갈 타이밍을 찾았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잠겨버린 후의 읖조림 같은 느낌을 주는 3부에서는

오히려 읽기 편해진다.


음.. 작중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내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되어서 그런가?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알라딘의 책 소개에서는,

죽어가는 개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는 영혜가 주인공이라고 소개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내게 받아들여지는 주인공은 영혜도 아니고, 

이상행동의 이유도 단지 저 기억뿐인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내 감상 속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영혜가 아닌 영혜의 언니고,

영혜 이상행동의 이유는 영혜의 억눌린 삶 자체다.




#인상깊은 구절들

(E-book 으로 봐서 페이지 표시는 E-book 기준이다.)


봄날 오후의 국철 승강장에 서서 죽음이 몇달 뒤로 다가와 있다고 느꼈을 때, (중략)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P. 221 - 3부 나무 불꽃 中


살면서 단 한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죽음이 다가오길 바라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실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내 주변의 누군가도 사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의 연극같은 삶을 살고 있다거나.




(전략)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순간 그녀는 뜻밖의 고통을 느꼈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시 기한 없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P. 217 - 3부 나무 불꽃 中


가끔 그런 때가 있다.


어두운 밤길을 걷거나, 한 달 가까이 기침이 멎지 않는다거나.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괜한 두려움이 덮칠 때에

사실은 그 두려움이 실현될 리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허탈함이 찾아올 때가.


오늘도 이 연극의 막을 내리지 못했고,

다시 또 기약 없는 커튼콜을 기다리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그 허탈함을 빚어내는 원인이 아닐까.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중략)

지우가 아니라면 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P. 224 - 3부 나무 불꽃 中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P. 242 - 3부 나무 불꽃 中


이미 죽은 자들은, 각자의 연극이 끝나지 않도록

저마다의 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끈이 연결된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돈이나 명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더 엉켜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이 결국 끈을 놓쳐버리고, 연극의 막을 내리면.

그 사람에게 연결된 사람들도 다 함께 느슨해지는.


작중 그녀는 그와 영혜가 경계를 뚫고 달려나감으로 인해

삶과의 끈이 느슨해짐을 느껴 잠깐은 죽음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연극은 커녕 아직 죽지도 않은 지우와의 끈을 자각하곤

연극을 계속 하기로 결심한 건 아닐까.




#마무리


어찌됐던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머리가 복잡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른 의미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일부러 해설 같은 거 하나도 안 읽고 쓴 글이라

이제 해설을 읽고 나면 쪽팔린다고 지우려 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남겨두고 싶었다.



사실 우울감이 덮쳐 올 때는,

어차피 와닿지도 않을 희망적인 얘기보다는

차라리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우울한 현실을 되짚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요즘 계속 우울했는데

이 책 덕에 내가 붙잡고 있는 끈들을 자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살아내야 할테니까.

이유라도 자각하고 있는 편이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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